버닝 관람 후기 (스포일러 많음) 느낌,생각

버닝 BURNING




-영화 버닝을 보았다. 개봉전부터 매우 오래간만에 나온 이창동 감독님의 작품이라는 점과 칸 영화제 진출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다. 한편으로는 개봉전 주연 배우 유아인이 SNS에서 보여준 행보와 스티브연의 욱일기 논란 등 시끄러운 부분도 없잖아 있기는 하다만, 이 부분은 작품 관람에 굳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바이다.

-줄거리는 간단히 다음과 같다. 주인공 종수(유아인)가 우연히 어릴 적 친구 해미(전종서)와 만나게 되어 가까워지게 된다. 그녀는 잠시 아프리카에 여행을 갔다가 벤(스티브 연)이라고 하는 정체불명의 남자와 우연히 만나게 된다. 그리고 해미는 공항에 마중나온 종수에게 벤을 소개시켜 주게 되는데...

-영화가 제법 길다. 2시간28분. 결말까지 줄거리를 정리해보면 그렇게 복잡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영화의 장면장면마다 호흡이 매우 길어서 자칫 지루하게 보일 수 있지만 거장 감독답게 묵묵히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줄거리만 가지고는 이걸 그저 스릴러라든가, 범죄 드라마로 만들 수도 있겠지만, 자극적인 표현은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 영화는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인데, 굳이 '그럴만한' 장면을 넣지 않았어도 상관없었을 거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럴만한' 장면이 있기에 이 영화의 무게는 무거워진다. (종수와 해미가 만나 섹스를 했기에 종수가 해미에게 집착하는 당위성이 생기고, 종수가 해미의 집에 가서 자위를 한다는 점에서 그 집착이 그저 성욕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정한 청춘을 말하는 것일지도?)

-이창동 감독님은 이 영화를 두고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춘'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했다. 시골에서 가난하게 살아가면서 한편으로는 소설가를 꿈꾸는 주인공 '종수'는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바로 지금 2~30대의 모습 그대로이다. 해미도 마찬가지로, 가족과 연을 끊고 재산도 없이 그저 홍보행사 직원으로 하루하루 겨우 살아가는 하루살이와 다를바 없다. 그에 비해 '벤'은 종수보다 나이는 6살 더 많을 뿐이지만 비싼 외제차를 타고, 강남에서 상류층 생활을 만끽하며 자기 하고 싶은대로 하면서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생이다. 종수는 해미를 좋아하고 있었지만, 준비할 틈도 없이 갑자기 그 사이에 끼어든 수수께끼의 인물 벤은 마음에 들지 않을 뿐만 아니라 존재 자체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게 한다. 종수의 이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벤이 해미와 같이 종수에 집에 놀러와서, 종수에게 자신의 취미에 대해 이야기하고, 해미가 실종되면서 영화의 분위기는 반전된다. 정확히 벤이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으로 묘사되지 않고, 오직 종수의 시선으로 영화는 진행되며 조금씩 실마리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종수는 결국 최후의 선택을 하게 되고 영화는 끝나게 된다.

-벤이 취미 생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추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요점은 그것이 어떻게 표현되고 묘사되는가 인데, 3명의 중심인물들 주변에 있는 다양한 요소들을 다양한 상징적 요소를 갖는다. 대충 생각나는대로 정리해보면...

.북한의 대남방송이 들리는 허름한 시골에 위치한 종수의 집.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한채 분노조절장애로 폭행사건을 저질러 구속된 아버지.
.종수네 집에 홀로 남은 송아지(종수는 암컷이라고 말했지만, 나중에 보니까 고환이 있는 걸로 봐서 숫소인듯).
.해미가 기르고 있던 고양이 '보일'
.해미가 이야기했던 우물 이야기의 진위 여부.
.해미가 말한 아프리카 부족의 '리틀 헝거'와 '그레이트 헝거'.
.해미가 마임을 설명하면서 말했던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생각하려면 없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된다.'
.벤이 종수와 소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난 뒤, 나중에 종수가 말한 소설가의 책을 읽고 있었다는 것.
.벤이 종수에게 가슴에서 베이스를 느껴야 한다고 말한 것.
.벤의 집 화장실 안에 있던 화장 도구?
.종수네 집 벽 구석에 있던 칼.
.종수의 꿈에서 나온 불타는 비닐하우스.

...해석의 여지가 너무나 많은 부분이라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 가장 신경에 쓰이는 것은 중후반. 종수가 벤의 차를 미행하면서 결국 시골 저수지까지 가게 되는데 거의 몇m밖에 떨어지지 않은 위치에서 숨어있다가 거의 들키다시피 일어선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것처럼 보이다가 돌연 종수의 집에서 자고 있던 것으로 전환이 되는데.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아니면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도처히 모르겠다.

-이런 요소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영화의 깊이와 무게는 더 짙어지는 거겠지.
아무튼 간만에 정말 제대로 깊이있는 독립 예술 영화를 본 기분이다. 칸 영화제에서도 좋은 결과 있기를...

-스텝롤을 보고 알게 된 건데, 원작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헛간을 태우다'라고 한다. 한 번 찾아서 읽어봐야겠다.

-유아인의 연기는 정말 좋았다. 중후반 상황이 심상찮게 반전되기 시작하면서 영혼이 빠져나간듯하면서도 집중하는 그 눈빛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듯.








덧글

  • 오전 2018/05/18 11:07 # 삭제 답글

    크..영화 설명이랑 포스터 뙇 나오는 데 뭔가 전체적으로 분위기 있는 리뷰네요. 잘 보고 갑니다. ^^
  • 한빈 2018/05/18 11:48 #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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